포크록에서 하드록, ‘언더’에서 ‘오버’까지, 한국 록이 배출한 ‘시대의 재능’ 윤도현(上)

포크록에서 하드록, ‘언더’에서 ‘오버’까지,

한국 록이 배출한 ‘시대의 재능’ 윤도현(上)

[매경프리미엄 홍장원 기자]

[스쿨오브락-99] 소위 ‘김나박이’로 불리는 국내 4대 남성 보컬의 실력은 당연히 탁월하다. 김범수의 짱짱한 발성, 고음으로 올라가도 성대 접촉률이 떨어지지 않아 성악의 발성처럼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만의 탁월함은 많은 가수 지망생들의 ‘워너비’가 된 지 오래다. 나얼이 소유하고 있는 ‘솔(soul) 충만한 두성’과 나이가 들수록 발성이 더 완숙해지고 깔끔하게 진화한 ‘끝판왕’ 박효신, 그리고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노래를 쏟아내고 있는 이수의 보컬은 왜 이들이 ‘김나박이’로 묶여서 불리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보컬 순위를 정할 때(이런 게 있을 수도 없겠지만) ‘김나박이 이름부터 먼저 써내면 그것이 옳으냐’ 하면, 그건 아니다. 김나박이와 견주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한국 보컬들이 엄청나게 많다. ‘김나박이’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보컬리스트의 시대’를 대표하는 그 시대 ‘남성 톱가수’를 모아놓은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김나박이에 포함되지 않은 동시대 남성 보컬리스트인 케이윌, 윤민수, 휘성, 환희 등의 대중가수가 이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좀 더 윗세대 보컬은 소위 ‘김나박이’ 용어가 나올 때 아예 후보 리스트에 빠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중에서 윤도현이란 가수는 한국 가요계 전체를 통틀어봐도 단연 ‘톱 순위’에 거론되어야 하는 보컬이라 할 수 있다.

▲ ‘윤도현의 러브레터’ 캡처.

윤도현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을 오래 진행하면서 남다른 입담과 재치를 선보여왔다. 종종 예능에 나와 활약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천생 연예인이다. 길렀다 잘랐다, 폈다 구부렸다 오가는 머리 스타일은 세련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오 필승 코리아’로 전국을 열광시켰던 역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윤도현은 한국 음악계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표적인 교두보라 할 수 있다. 그의 ‘연예인스러운’ 재능은 그가 부여받은 탤런트의 극히 일부분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의미 있는 기자간담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2019년 3월 29일부터 5월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어게인, 학전 콘서트’ 참가자들이 모인 기자간담회였다.

여기 모인 멤버는 한국 라이브 문화의 역사다. 들국화의 전인권을 시작으로 김수철, 김현철, 윤도현이 소속된 밴드인 YB, 권진원, 안치환, 웅산, 강산에, 유재하 동문회, 정원영, 푸른 곰팡이, 김광민, 노영심, 김광석 다시 부르기(박학기·유리상자·동물원·한동준·장필순·자전거 탄 풍경) 를 비롯한 14팀이 8주 동안 릴레이 콘서트를 이어간다.

1990년대 학전은 한국 대학로 라이브 문화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고(故) 김광석은 이곳에서 1000회 공연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당초 연극을 올리기 위한 소극장으로 설계됐지만 한국 라이브 클럽 문화가 홍대로 옮겨간 데다(지금은 이것조차 좀 시들해졌지만) 댄스 음악으로 도배된 1990년대 가요계에서 갈 곳 없는 밴드들에 대학로에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밴드들도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성격이 좀 변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인권이 “예전 들국화 공연 때 관객이 최대 465명까지 들어와 문까지 뜯어내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작고 소박한 곳이다. 가수가 흘리는 땀방울까지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무대다. 이날 윤도현은 “YB는 학전에서 태어난 밴드”라며 “이번 공연은 현재 YB에서 과거로 올라가 데뷔 당시 YB로 가는 콘셉트로 준비 중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했던 말을 정리하면 YB와 윤도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윤도현은 “데뷔 전 대학로라는 장소는 꿈의 장소였다. 연극도 많고 공연도 많았는데 동경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다니곤 했다. 난 ‘파주 사람’이라서 자주 오기가 힘들었다. 인디 시절에 하던 포크 그룹에서 기타와 키보드를 맡으며 무대에 오르곤 했다. 게스트로 여기저기 많이 불려다녔다. 김광석 콘서트, 권진원 콘서트에도 게스트를 섰다. (초창기) 이곳에서 공연도 많이 했는데 30년이 지난 후에 역사적인 공연을 하게 됐다. 시작부터 함께해온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가수 데뷔를 위해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연습생 트레이닝을 받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대에 오르는 게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이 시스템을 통해 BTS처럼 전 세계를 열광시킨 가수가 나온 것을 보면 이 역시 효용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혹은 슈퍼스타K 등을 통해 미지의 원석이 치열한 생방송 경쟁을 거치며 시청자들이 평가하는 ‘스타성’을 등에 업고 데뷔하게 되는 절차도 관례화됐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없던 1990년대에는 학전을 비롯한 언더그라운드 무대가 기획사였으며 슈퍼스타K였다. 윤도현은 여기서 살아남아 인기를 끌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그가 학전의 무대를 잊지 않겠다고 한것은 BTS가 배고픈 연습생 시절을 기억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인디 출신 윤도현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이기도 할 것이다.

윤도현의 노래, 그리고 YB의 노래로 ‘사랑 TWO’ ‘잊을께’ ‘너를 보내고’ ‘사랑했나봐’를 비롯한 사랑 노래 가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가수 데뷔 초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앞서 인용한 윤도현의 인터뷰 중에 ‘파주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주는 대한민국 최북단 지역으로 다수의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지금이야 많이 개발돼서 아파트 단지도 들어서고 대기업도 공장을 짓곤 했지만 1972년 태어난 윤도현의 어린 시절 환경은 이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파주 사람이라서 서울 오기가 힘들었다”고 얘기한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지금으로 치면 동탄에 사니 서울 오기 힘들다. 집이 판교라 대학로가 멀어서 자주 못 왔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도어즈의 공연을 보고 음악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시작은 ‘포크록’이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윤도현이 데뷔 시절 꿈꾼 그의 모습이다. 그는 데뷔 전 학전을 비롯한 소극장 무대를 많이 다녔는데, 당시 고(故) 김광석이 그를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아마 통기타 가수의 신화인 김광석의 모습에 매료되어서 그를 이상형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그의 풋풋했던 모습이 담긴 앨범이 그의 첫 번째 앨범 ‘가을 우체국 앞에서’다. 1994년 나온 이 앨범에는 ‘사랑 TWO’를 비롯한 잔잔한 노래가 여럿 실려 있다. 훗날 YB 앨범에 다시 실려 히트하게 되는 ‘사랑 TWO’는 이 당시 타이틀 곡이 아니었다. 타이틀곡은 ‘타잔’이란 노래였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난 많은 꿈을 꾸었지
말도 안 되는 꿈만 꾸었어
그래도 그중에 한 가진 이루었지

 

꿈 많던 어린 시절 아득한 기억 속에
타잔이라는 아저씨가 있었어
그 아저씰 너무너무 좋아했었지

 

아아 나는 타잔
아아 누렁인 치타
옆집에 살던 예쁜 순인 제인

 

타잔 아저씨처럼 튼튼해지고 싶어서
우리 아버지의 역기를 들다가
그 밑에 깔려 하늘나라 갈 뻔했지

 

타잔 아저씨처럼 용감해지고 싶어서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지
그 후로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어

 

아아 나는 타잔
아아 누렁인 치타 예예
옆집에 살던 예쁜 순인 제인

 

아아 나는 타잔 예예
아아 누렁인 치타 예
예쁘장한 순이도 말 잘 듣던 누렁이도 워워
모두모두모두 다 보고싶구나 예예
모두모두모두 다 보고싶구나
모두모두모두 다 보고싶구나

이 노래는 윤도현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그의 노래 대다수는 그가 만든 곡이다. 참고로 편곡은 ‘토미 기타’가 예명이었던 당대 최고의 기타 테크니션이 했었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 가사를 읽어보면 그의 풋풋한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타잔 아저씨처럼 튼튼해지고 싶어서 역기를 들다가 다쳐 하늘나라 갈 뻔했지’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가 타이틀곡이었다. 흥행만을 고려해 타이틀곡을 선정한 것은 아닐 것이란 짐작이 든다. ‘누렁이’ ‘순이’를 비롯한 시골 정취가 물씬 나는 가사가 알알이 박혀 있다. 당시 윤도현은 짧은 머리에 통기타를 메는 연출로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앨범 홍보를 했다. 세련된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의 초기 시절 심정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곡을 꼽자면 이 앨범에 실려 있는 ‘임진강’이란 노래를 거론할 수 있다.

신록이 푸르른 이곳에
햇살이 어지러운 이곳에
널 바라보고 있노라면 때 묻은
나의 마음 깨끗이 씻기네
황토색 네 모습이 탁해 보이지만
그건 엄청난 설움의 흔적

 

모두의 희망 하나 되는 것은
언제나 이뤄질까
임진강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흘러라

 

산들바람 불어오는데 강 건너
그곳이 보이네
하늘을 날아가는 물샐 보면
어느새 나도 저 하늘 높이 날으네
우리 살고 있는 이곳은 하나의
땅이지만 사람은 둘이구나

‘파주 키즈’로 자랐던 윤도현이 보고 느낀 것을 가사로 옮겨놓은 곡이다. 이 곡 역시 윤도현이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다. ‘황토색 네 모습이 탁해 보이지만, 그건 엄청난 설움의 흔적’ ‘모두의 희망 하나 되는 것은 언제나 이뤄질까’ ‘우리 살고 있는 이곳은 하나의 땅이지만 사람은 둘이구나’ 등의 가사를 보면 통일을 염원하는 윤도현의 갈증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앨범은 타잔을 필두로 방송국을 돌아다닌 윤도현 덕에 당시 나름의 인지도를 기록하는데 엄청난 흥행을 거두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윤도현을 ‘포크의 기대주’로 발돋움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 당시 윤도현은 김광석의 뒤를 잇는 포크 가수로 분류되곤 했다. 그리고 윤도현 역시 포크에 특화된 정체성에서 작사와 작곡을 했기 때문에 이 앨범까지는 윤도현의 무시무시한 가창력이 많이 도드라보이지는 않는다(이 앨범에서 윤도현이 노래를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1000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윤도현이 200~300 정도만 역량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 앨범의 소득이라면 다음해 나온 영화 ‘정글 스토리’에 윤도현이 주연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채 1만명도 들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지만 신해철이 만든 영화 OST가 40만장이나 팔려 투자사가 음반 덕에 수익을 냈다는 전설적인 영화다. 주인공 윤도현이 록스타의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는데, 여러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척박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깨알같이 묘사돼 있다. 이 영화에 나온 주인공 윤도현의 모습이 데뷔 전 윤도현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윤도현은 여전히 언더에 기반을 두고 이제 막 오버그라운드 문을 두드리는 ‘재능 있는 청년’ 정도였다. 이미 솔로 활동 성공을 거쳐 그룹 넥스트로 음악적 진화를 이룬 선배 신해철은 당시 앨범 속지를 통해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 적으며 그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앨범 OST는 한국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명반이라 할 수 있다. 신해철의 음악적 역량이 극대화된 앨범 중 하나다. 선배 ‘산울림’의 곡을 리메이크해 인더스트리얼 형태로 만든 ‘내 마음은 황무지’와 1970년대 시대상을 가사로 담은 ’70년대에 바침’ 등의 노래가 들어있고, 타이틀곡 개념이었던(활동은 안 했으나) ‘절망에 관하여’는 신해철 보컬 역사상 최정점의 역량에서 부른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의 센 가성으로 3옥타브 초·중반 초고음을 있는 힘껏 질러댄다).

이후 1996년 2집 앨범부터 윤도현은 지금과 같은 윤도현 밴드(YB) 형태로 활동하게 된다. 이 앨범부터 윤도현은 포크록이 아닌 하드록을 주무기로 삼게 된다. 지금은 ‘YB’란 이름이 더 알려져있지만 이 앨범 당시만 하더라도 ‘윤도현 밴드’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윤도현의 전성기를 예비했던 두 번째 앨범부터 다음 글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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